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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학문

명상록이 주는 교훈 - 제 3권

by greentworkshop 2025. 12. 22.
※일부 주관적 해석 포함※

ΜΑΡΚΟΥ ΑΝΤΩΝΙΝΟΥ ΑΥΤΟΚΡΑΤΟΡΟΣ  
ΤΑ ΕΙΣ ΕΑΥΤΟΝ
마르쿠스 안토니누스 황제의 명상록

노란색은 다시 눈여겨 볼 내용들을 표기한 것

푸른색은 시대적인 맥락을 감안한 해석

초록색은 각 문단에 관한 주관적인 요약

붉은색은 부정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내용

 

3장의 주된 내용

앞선 2권에서 강조한 '시간의 유한함'이라는 문제 너머, '인지적 쇠퇴'라는 우리와 더욱 가깝게 위치한 문제에 대해 말한다. 단순히 수명이 다하는 것보다, '살아있어도 올바르게 판단한 지적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욱 끔찍한 일임을 경고한다.

 

1.1. I. 사람은 매일 자신의 삶이 얼마나 낭비되는지를 생각할 뿐만 아니라

능력은 줄어들겠지만, 오래 산다 하더라도 그의 이해력이 사업상의 문제를 신중하게 고려하거나 사색하는 데 필요한 만큼 충분히 유능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도 있다. 참된 지식은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모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일단 병에 걸리기 시작하면 호흡, 영양 섭취, 상상력, 식욕 등 다른 자연적인 능력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그는 그것들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자신을 올바르게 활용하고, 모든 일에서 옳고 정의로운 것을 정확하게 지키고, 모든 잘못된 생각이나 갑작스러운 불안과 상상을 바로잡고, 심지어 더 오래 살지 못할지라도 이 문제, 즉 정신의 가장 좋은 힘과 활력이 필요한 모든 것을 제대로 생각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 그의 능력과 힘은 이미 지나가 버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둘러야 한다. 네가 날마다 죽음에 더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물의 참된 본질을 알고 그 지식에 따라 모든 행동을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네 안의 지적 능력이 날마다 쇠퇴하고 퇴화하며, 죽기 전에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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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쉬고, 먹고, 자는 것만 잘해도 살 수는 있지만, 그것은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는 판단력'은 질병과 노화로 인한 죽음보다 훨씬 더 빨리 찾아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좀 더 서둘러야 한다. 단순히 죽음의 공포 때문이 아닌,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능력'이 더 쇠퇴하기전에 정신의 활력이 남아 있는 지금 잘못된 생각들에 휘둘리지 않을 견고한 지혜를 쌓아두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나 자신'으로 살게될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1.2. II. 이것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것은

자연적인 현상에는 그 자체로 즐겁고 유쾌한 무언가가 있다. 예를 들어, 빵을 구울 때 어떤 부분은 갈라지고 찢어져서 껍질이 울퉁불퉁해지지만, 원래는 고르고 균일해야 했던 빵의 특성상 갈라지고 찢어진 부분들이 오히려 보기 좋고 식욕을 돋우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게 된다. 마찬가지로 무화과는 쪼그라들기 시작하고 시들기 시작할 때 가장 아름답고 잘 익은 것으로 여겨진다. 잘 익은 올리브도 부패하기 직전일 때 비로소 제맛을 낸다. 포도송이가 늘어진 모습, 사자의 이마, 멧돼지의 거품 등 많은 것들이 그 자체로는 아름답지 않지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기에 보기 좋고 즐겁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깊은 통찰력과 이해력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것을, 심지어 단순한 부속물이나 자연적인 부속물에 불과한 것들까지도 고려한다면, 그에게 즐거움과 기쁨의 원천이 되지 않을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숙련된 화가나 다른 장인들이 모방한 것만큼이나 야생 동물의 진정한 표정을 보는 데서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또한 남녀를 불문하고 노년의 적절한 성숙함과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며, 그 밖에도 세상에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이 있다면, 순수하고 절제된 눈으로 곧 발견하고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비롯한 많은 것들을 그는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믿기에는 어려운 일이지만, 자연과 모든 자연 만물에 대해 진정으로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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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아 철학의 관점에서 우주는 그 자체로 완벽한 예술 작품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추하다'거나 '결함'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그것이 자연의 거대한 질서의 일부임을 보지 못하는 우리의 좁은 시야 때문이다.

 깊은 통찰력을 가진 사람은 인위적인 모습이 아닌, 자연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빵 껍질이 제멋대로 갈라진 모습, 무화과가 익어 쪼그라든 자태, 맹수의 사나운 표정...같은 것들, 심지어는 불완전함조차 전체의 흐름 속에서는 경이로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물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순수한 눈을 가질 때, 우리는 세상 모든 만물에서 끊이지 않는 기쁨의 원천을 발견하게 된다.

 

1.3. III. 히포크라테스는 많은 질병을 치료했지만, 자신도 병에 걸렸다.

 많은 이들이 죽었다. 칼데아인들과 점성술사들은 여러 사람의 죽음을 예언했지만, 결국 자신들도 운명에 놀랐다. 알렉산더 대왕과 폼페이우스, 그리고 가이우스 카이사르는 수많은 도시를 파괴하고 전장에서 수천 명의 기병과 보병을 죽였지만, 결국 자신들도 목숨을 잃었다. 헤라클리토스는 세상의 마지막이자 가장 큰 대화재에 관한 수많은 자연 논문을 썼지만, 결국 몸속은 물로 가득 차고 겉은 흙과 배설물로 뒤덮인 채 죽었다. 데모크리토스는 이 때문에 죽었고, 소크라테스는 또 다른 종류의 해충, 즉 사악하고 불경스러운 인간들 때문에 죽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너는 배를 타고 항해하여 육지에 도착했으니 나가라. 만약 다른 세상으로 간다면, 그곳에서도 너는 도처에 계시는 신들을 만날 것이다. 모든 생명과 감각이 사라진다면, 너 또한 고통이나 쾌락에 시달리지 않게 될 것이고, 이 비천한 오두막을 섬기고 돌볼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더욱 비열한 자는 그것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뛰어난가에 따라 더욱 비열해진다. 전자는 이성적인 실체이자 정신인 반면, 후자는 흙과 피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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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정복자 알렉산더와 카이사르도, 인류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조차 죽음앞에서는 모두 평등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자연의 섭리를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자연의 섭리 앞에 우리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하는가?

 삶은 배를 타고 떠나는 하나의 여정과도 같다. 그리고 죽음은 항해 중에 겪는 재앙이나 사고가 아니라 ,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하여 배에서 내리는 당연한 절차일 뿐이다. 그러니 '육체(비천한 오두막)'의 안락과 쾌락을 섬기느라 비굴해지지 마라. 배에서 내릴 때가 되었다면, 그 어느 때보다 홀가분하게 떠나라.

 

1.4. IV. 남은 생을 자신이 아닌 것들을 향한 염려와 망상에 허비하지 말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얽매이지 마라. 그것이 공익과 직결되거나 당신이 더 나은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다시 말해, 타인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꾸미고 있는지 등 사소한 호기심에 사로잡혀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잡념은 당신의 이성을 살피고 스스로를 관찰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러므로 당신 생각의 흐름 속에 불필요하고 무례한 것, 특히 악의적인 호기심이 끼어들지 않도록 경계하라. 누군가 갑자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곧바로 대답할 수 있는 것들만 생각하도록 노력해라. 당신의 대답을 통해 당신이 쾌락에 휘둘리지 않고, 시기나 의심 같은 부끄러운 생각에서 벗어난 진실하고 평화로운 사람이라는 것이 즉시 드러나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진정으로 고귀한 가치를 붙잡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들은 자신 안에 모셔진 '신성한 이성'과 깊이 교감하는 제사장과 같다. 그는 쾌락에 물들지 않고 고통에 굴하지 않으며, 외부의 어떤 모욕에도 상처받지 않는 '최고의 씨름꾼'처럼 삶이라는 경기에 임한다.

 그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온 마음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인다. 공익을 위한 중대한 사유가 없다면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것들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본래 유익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이성적인 존재가 동료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인간을 배려하지만, 모든 사람의 칭찬을 바라지는 않는다. 오직 자연의 본성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인정만을 가치 있게 여긴다. 본성에 어긋난 삶을 사는 자들이 집 안팎에서 어떤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며 사는지 잘 알고 있기에, 자기 자신조차 모르는 이들의 칭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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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얽매이지 마라 : ‘감정적 독립’은 관계를 끊으라거나 이기적으로 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타인의 말과 행동에 내 마음이 휘둘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으라는 뜻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당신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 가장 집중해야 한다.

곧바로 대답할 수 있는 것들만 생각... : 우리는 불확실한 것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느라 '지금 이 순간'을 소홀히 대하곤 한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물어보든 자신이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걱정, 의혹, 근심 없이 자신있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에만 관심을... : 마찬가지로 우리는 바꿀 수 없는 일(지나간 일, 일어나지 않은 일, 다른 이들의 평판...)들을 걱정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한다. 우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 내 권한 밖의 일이라면 과감히 내려놓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에만 전력을 다해야 한다.

자기 자신조차 모르는 이들의 칭찬 : 오직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들의 칭찬을 가치있게 여겨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독립적인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

 

1.5. V. 네 의지에 반하는 일도, 공동체에 반하는 일도 하지 말라.

충분한 검토 없이, 그리고 마지못해 말하지 마십시오. 기발하고 깔끔한 언어로 생각을 늘어놓으려 하지 마십시오.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도, 그렇다고 장사꾼처럼 행동하지도 마십시오. 더욱이, 당신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당신이 한 사람, 나이 든 사람, 사교적인 사람, 로마인, 군주, 마치 나팔 소리만이 이 세상을 떠날 신호인 듯 삶을 질서정연하게 살아온 사람임을 알게 하십시오. 말이나 행동에 맹세도, 증인도 필요 없는 사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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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분한 검토 없이, 그리고 마지못해 하는 말은 내면과 행동의 불일치를 뜻한다. 즉 이는 이성에 따른 삶이 아니라 상황에 끌려다니는 수동적인 삶이기에, 그는 이같은 것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본질보다 겉모습에 치중하는 태도를 경계했다. 이는 자신의 보잘것 없는 모습을 포장하려는 추악한 '허영심'일 뿐이며 정말로 내면이 가득찬 사람은 굳이 자신을 뽐내기 위해 꾸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장사꾼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이익을 얻기 위해 상대의 비위를 맞춘다. 남을 현혹하는 행위 역시 그들의 인정을 받고 이득을 취하기 위한 비굴한 태도(정신적 독립성을 해치는)라고 여겼다. 

 

1.6. VI. 쾌활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혹은 봉사, 혹은 타인에게서 얻어야 하는 안식과 평온함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오히려 스스로 바르게 살거나 늘 바르게 살아온 사람과 같지, 교정받은 사람과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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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서 얻어야 하는 안식과 평온을 경계하라. 우리는 힘들 때, 누군가의 위로를 바라고, 남의 도움을 절실히 바라기도 하지만 그는 이것을'위험한 의존'으로 보았다. 물론 그들의 호의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타인의 위로나 도움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것이기 때문이다. (비판, 사회적 압박도 마찬가지)

 만약 내 평온함이 전적으로 그들에게 달려 있다면, 그들이 마음을 바꿀 때 내 행복도 함께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남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길 기다리거나 누군가에 의해 내 삶이 바로잡히기를(교정받기를) 기대하지 마라. 진정한 의미의 평온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1.7. VII. 만일 네가 이 필멸의 삶에서 그보다 더 나은 것을 발견한다면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최상의 가치' )

 진실, 절제, 용기, 그리고 정의보다 더 나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이성에 따라 옳게 행하는 일과, 자신의 의지나 지식과는 상관없이 우주의 섭리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만족하는 마음이다. 만약 이보다 더 나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온 마음을 다해 그것에 전념하고, 어디에서든 그 최상의 것을 발견한다면 마음껏 누려야 한다.

 그러나 만약 당신 안에 있는 정신(이성)보다 더 나은 것을 찾을 수 없다면,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고 허황된 상상에 굴복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면, 또한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모든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 신의 뜻에 따르고 사람들을 돌보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없다면, 다른 모든 것들은 이것에 비추어 하찮고 무가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잠시라도 마음을 흔드는 다른 유혹에 굴복하지 마라. 그런 것들은 당신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진정한 선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며, 결국 당신의 통제권을 앗아갈 것이다.

 대중의 찬사, 명예, 부, 쾌락 등 열등한 본성을 지닌 것들이 이성적이고 실질적인 선과 대립하거나 경쟁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러한 것들은 비록 잠시 동안은 즐거움을 줄지 모르나, 곧 마음을 사로잡아 인간을 왜곡시키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절대적인 자유 의지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고수해야 한다.

 흔히 사람들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것은 '가장 유익한 것'을 의미한다. 만약 그것이 '이성적인 인간'으로서의 당신에게 유익하다면 그것을 고수하고 옹호하라. 그러나 만약 그것이 단지 '육체적인 피조물'로서의 인간에게만 유익한 것이라면 단호히 거부하라.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겉모습의 그럴듯함에 현혹되지 말고, 사물의 본질을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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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가치(= 만족하는 마음) : 그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운명(행운과 불운)에 순응하고 만족하는 마음이다. 이것은 그가 생각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이며, 이 경지에 이르면 세상 그 무엇도 우리를 흔들 수 없다고 믿었다.
 다른 모든 것들 : 돈, 명예, 아름다움 등은 우리가 흔히 목표로 삼는 외부적인 가치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내 영혼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며,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무가치함)

 유익한 것 : 그가 말하는 유익한 것이란 '육체적 편안함'을 주는 물건들이 아닌, 내 '정신적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들을 말한다. 

 

1.8. VIII. 어떤 것도 유익하다고 여기지 마라. 그것은 언제나 너를 억압할 것이다.

 

 자신의 신의를 저버리거나, 순결을 잃는 것, 혹은 누군가를 미워하고 의심하며 저주하게 만드는 그 어떤 것도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여기지 마라. 또한 남을 속이거나 벽과 베일 뒤에 숨겨야 할 부끄러운 욕망을 품게 하는 것 역시 결코 유익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이성과 정신, 그리고 그 안에서 비롯되는 신성한 덕의 가치를 모든 것보다 우선시하는 사람은 결코 슬퍼하거나 탄식하지 않으며 한숨짓지도 않는다. 그는 억지로 고독을 찾아 숨지도 않고, 공허한 교제를 갈망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떠한 욕망이나 두려움도 없이 산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영혼이 육체라는 옷을 입고 이 세상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 것인지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설령 지금 당장 세상을 떠나야 한다 하더라도, 그는 겸손하고 품위 있게 완수해야 할 다른 임무를 대하듯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의 평생에 걸친 유일한 관심사는 자신의 마음이 언제나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존재에게 합당한 의도와 목표로 가득 차 있도록 유지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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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와 순결 : 이는 도덕적 관념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의 약속까지도 포괄하는 의미이다. 아무리 큰 부나 권력이 따르더라도 자신과 타인을 속여야 한다면, 그것은 이득이 아니라 오히려 '영혼의 손실'이다. 나에게 떳떳하지 못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남을 속이게 되며, 그 순간부터 비밀의 노예가 됨을 알아야 한다.

욕망과 두려움 : 우리를 외부세계의 노예로 만드는 '통제 불가능한 집착'이다. 대표적으로 명예, 재산, 비난, 죽음 같은 것들이 있으며 주로 외부 가치에 우리가 부여하는 감정들이다. 

의도의 순수함 : 타인에게 잘 보이려 애쓰거나 비난을 두려워 하는 대신, 나 자신만의 '신성한 이성'을 세워야 한다. 남들의 평가나 결과에 대한 걱정보다 '내 의도의 순수함'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직 우리에게 집중할 때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을 후회없이 보낼 수 있다.

 

1.9. IX. 진정으로 훈련되고 정화된 마음

이런 마음에서는 더럽고 불순한 것을 결코 찾아볼 수 없다. 남에게 아첨하지도 가식적인 것도 없으며, 편파적이지도, 악의도, 불쾌함도, 숨기는 일도 없다.

이러한 사람의 삶은 죽음조차 결코 불완전하게 만들 수 없다. 비록 삶이 갑자기 끝난다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역할을 매 순간 완벽히 수행해왔기에, 인생이라는 연극이 도중에 멈추더라도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연기를 보여준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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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정결함 : 위에서 이미 언급했다시피 단순히 죄를 짓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숨길 것이 없는,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들의 기본 조건이다.

삶의 완결성 :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죽음'이란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사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적인 인간에게 삶의 가치는 '길이'가 아닌 '밀도'에 있다. 매 순간 이성에 부합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에게 죽음은 결코 미완성이 아니며, 그가 머물다 간 지점까지가 곧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된다.

 

 

1.10. X. 네 의견을 표현하는 능력을 최대한 존중하고 예의를 갖춰 사용해야 한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당신의 생각이 본성이나 이성적 존재의 원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성적 존재로서 살아가는 목적은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친절하며, 모든 일에 기꺼이 신의 섭리에 순종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복잡한 생각들을 제쳐두고 이 몇 가지 원칙에만 집중하라. 사람이 사는 시간은 오직 한순간에 불과한 '지금 이 찰나'뿐이라는 사실. 그 외의 모든 시간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이거나, 아직 오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일 뿐이라는 것을.

 사람이 사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고, 머무는 장소 또한 지구의 아주 작은 한 구석에 지나지 않는다. 죽은 후에 남겨질 가장 거대한 명성조차 보잘것없으며, 그 명성조차도 곧 죽음을 맞이할 어리석은 인간들에 의해 전해질 뿐이다.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에도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오래전에 죽어 사라진 사람을 어떻게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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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기적)이다. 아우렐리우스는 나 자신을 돌보되,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를 일깨워 주었다. 이는 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어깨를 누르던 '과한 자부심'이나 '잘해야 한다는 강박'의 무게를 덜어내는 과정이다.

 때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보잘것 없다는 사실이 큰 위로로 다가오기도 한다. 내가 지금 겪는 죽을 것 같은 고통도 우주의 시간으로 본다면 아주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대단한 존재가 아님을 인정할 때 비로소 나를 짓누르는 책임감과 부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하고 짧은 시간동안 우리가 가장 많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내게 정말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그가 우리에게 존재의 보잘것없음을 상기시킨 이유는 우리의 하찮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쓸데없는 걱정과 욕심을 비워내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우리 삶에서 진짜 소중한 것들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다.

 

1.11. XI. 언제나 우리 곁을 지키는 이러한 가르침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한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대상을 마치 세밀한 그림을 그리듯 자세히 묘사해 보아야 한다. 그 본연의 모습 그대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되, 각 부분과 영역을 나누어 온전히 그리고 철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마음속으로 그 대상 자체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각각 고유하고 참된 이름으로 불러보아야 한다.

 진정한 관대함을 기르는 데 있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그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우리는 사물을 대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것의 진정한 용도는 무엇인가? 이것이 존재하는 이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주 전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것은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나아가 우리는 인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세계의 모든 도시조차 마치 하나의 집이나 가족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최고의 도시(우주)'가 있다면, 그 속에서 시민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가치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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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하고 참된 이름 : 우리는 보통 사물을 볼 때 사회적 가치나 욕망이 투영된 모습을 보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겉치레와 편견을 걷어내야 온전히 사물의 실체를 직시할 수 있다.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 욕심같은 감정들이 근거 없는 허상임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용도 :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나 물건을 판단할 때, 그것이 내 감정에 미치는 영향(좋은지, 나쁜지)을 따지기에 앞서 그것의 '기능'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겪는 이 일이 나를 괴롭히기 위한 장애물인지, 아니면 나의 성장을 돕는 도구인지는 오직 나의 이성적인 판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만이 타인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을 수 있다. 나도, 다른 이도 모두 똑같은 이 세계의 구성원임을 자각할 때, 타인에 대한 친절이 자연스레 행동에 드러나게 된다.

 

1.12. XII. 지금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이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인가? 수많은 미덕 중에서 지금 이 상황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온유함인가, 용기인가, 진실함인가, 믿음인가, 아니면 성실함이나 만족함인가?

 우리는 마주하는 모든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은 신(우주)에게서 직접 온 것이고, 어떤 일은 운명적인 질서와 사건의 연쇄 속에서 일어난 것이며, 또 어떤 일은 우연한 사고처럼 찾아온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이 상황이 설령 나의 이웃이나 친척, 혹은 동료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는 자신에게 진정으로 자연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무지한 상태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무엇이 본성에 부합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공동체적 유대와 자연의 법칙에 따라 그를 친절하고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 다만, 도덕적 선악과는 상관없는 사소한 일들에 대해서는 사안의 경중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그 가치에 걸맞게 대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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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미덕 : 이는 단순히 '착하게 살자'는 도덕적 훈계가 아니다 . 오히려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마음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상황에 맞춰 꺼내 쓰는 '정신적 도구'로서 미덕을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자연스러운 것 : 여기서 자연이란 동네 숲이나 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 세상 모든 일이 원인과 결과에 따라 질서 있게 흘러가는 이치를 말한다. 계절이 바뀌고 생명이 순환하는 것처럼, 나에게 닥친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반면, 화를 내거나 이기적으로 구는 것은 이러한 거대한 질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앓는 '정신적 질병'과도 같다.

사소한 일들 :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일들, 즉 타인의 평판이나 이미 지나간 사건들에 일일이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은 '사소한 것'으로 분류해 내버려 둠으로써, 내 귀한 에너지를 오직 내가 바꿀 수 있는 '나의 선택'에만 집중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1.13. XIII. 만약 그대가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고자 한다면, 규칙에 따라 행동해라

 옳고 그름과 이성을 신중하고 확고하면서도 온유하게 탐구하고, 이를 다른 잡다한 일들과 섞지 말아야 한다. 오직 자신의 정신을 더럽히지 않고 순수하게 유지하는 데 전념해야 하며, 결과에 대한 헛된 희망이나 두려움 없이 오로지 그 원칙에만 충실해야 한다.

 행하고 말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영웅적인 진실'을 추구하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간다면, 그대는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을 걷는 그대를 그 누구도 결코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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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원칙(Principle): 흔들리지 않는 삶의 세 가지 기준

판단의 원칙 : 외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는 오직 '나의 이성'에 달려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현재의 원칙 : 이미 지나간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염려하지 않고,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지금 이 순간'의 행동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본성의 원칙 : 분노, 질투, 탐욕 같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본성(이성)에 기꺼이 순응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영웅적인 진실 : 이는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치레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거두는 승리를 의미한다. 즉 생각과 행동의 일치이며. 남들이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양심과 이성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는 정직함이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보더라도 '그것이 옳았으므로 만족한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믿음.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영웅적인 면모'이다.

 

1.14. XIV. 의사와 외과의사는 갑작스러운 수술에 대비해 항상 도구를 준비한다.

 갑작스러운 치료에 대비해 의사가 항상 준비된 자세를 갖추듯이, 그대 또한 신성한 것과 인간적인 것 모두에 대한 지식을 언제든 꺼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어떠한 일을 하든, 설령 그것이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신성한 가치와 인간적인 삶 사이의 긴밀한 관계와 연결고리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 신성한 원리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세속적인 삶에서 결코 올바른 결실을 맺을 수 없으며, 반대로 인간적인 삶에 대한 존중 없이는 신성한 가치 또한 온전히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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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가치 :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보편적인 법칙(삶과 죽음)

인간적인 삶 : 사회적 관계와 도덕적인 실천(가족, 동료, 친구들과의 관계 / 매일 마주하는 과제들)

 

 
 

1.15. XV. 그대가 적어둔 교훈들을 다시 읽어볼 수 있을 만큼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모아온 주석서들도, 고대 로마와 그리스인들의 위대한 행적들도, 노년을 대비해 여러 책에서 발췌해 비축해 두었던 모든 기록들도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대신 삶의 마지막을 향해 서둘러 나아가라. 헛된 희망은 모두 버리고, 그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집중하라. 진정으로 자신을 아끼고 생각한다면, 기회가 남아 있는 지금 이 순간 스스로를 구원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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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희망(내일은 다를 것이라는 착각) : 많은 이들이 범하는 실수이자 위험한 착각이다. 수많은 자기개발 서적을 읽고 마음을 다잡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은퇴하고 나면", "여유가 생기면" 같은 온갖 핑계로 가장 중요한 일들을 계속해서 미룬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서 미래의 어떤 시점이나 외부의 상황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당장 집어치워라.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우리는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근거없는 미래를 기약하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일 : 책 속의 지혜를 나의 것으로 만들어 행동으로 증명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1.16. XVI. 훔치다, 씨를 뿌리다, 사다, 쉬다, 해야 할 일을 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시각으로 보는 것) 이 말들의 의미와 이해의 방식이 얼마나 다양한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몸, 영혼, 이해력. 감각이 본래 몸에 속하고 욕망과 애정이 영혼에 속하듯이, 올바른 원칙과 교리는 오직 이성적인 이해력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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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류의 시각 : 이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며 살지 말고, 네가 하는 모든 행동(사고, 팔고, 쉬는 일 등)에 철학적인 의미와 원칙을 담아라"는 뜻입니다. ex) 쉬다 = 다음 활동을 위해 정신을 정화하는 준비

그는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를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몸(감각) : 쾌락, 배고픔 같은 본능적 욕구, 둘째는 영혼(욕망과 감정) :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마음, 마지막은 이해력(원칙과 이성) : 사물의 본질을 판단하고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힘

 

 
 

1.17. XVII.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공상을 하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능력이다.

 영혼이 욕망과 갈망에 이끌려 격렬하게 요동치는 것은 야수와 괴물들에게나 어울리는 일이다. 또한, 겉으로 드러나는 평범한 의무를 이성에 따라 수행하는 것은 신을 믿지 않거나, 조국을 배신하고, 문이 닫힌 밀실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특성이 그들과 공통적일지라도, 오직 선한 사람만이 가지는 고유한 자질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과 정해진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다. 또한 가슴속에 자리 잡은 내면의 신성(영혼)을 헛된 망상으로 더럽히지 않고 순수하게 수호하며, 결코 진실에 어긋나는 말을 하거나 정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비록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진실함과 만족스러운 삶을 믿어주지 않을지라도, 그들에게 화를 내지 않으며 삶의 종착지로 향하는 길에서 벗어나지도 않는다. 사람은 마땅히 그 길을 순수하고 평온하게 걸어가야 하며, 언제든 떠날 준비를 마친 채 아무런 강요 없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에 순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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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는 끝까지, 운명에 순응하고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